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인공지능이 의식을 얻고, 언젠가 인류를 초월한다는 이야기는 인류의 가장 기발한 상상이자, 인간 존재에 관한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주제입니다. 수많은 SF 영화들이 이러한 내용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죠. 영화 매트릭스에선 인류를 억압하고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기계가 등장하고, 심지어 인류를 없애야 한다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과 같은 초지성의 존재가 상정되기도 합니다. 이 상상이 실제로 실현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이죠.
머신러닝과 자율주행, 딥러닝과 같은 단어들이 넘쳐나고, 막대한 돈이 인공지능의 개발에 투입되는 시대에서, 인류가 이 기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기계, 혹은 더 나아가서 인간을 초월하는 초지성이 등장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바보 같은 인공지능과 초지성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까요?
Deep Learning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2015년에 내놓은 알파고는 바둑에서 인간을 완전히 꺾는 인공지능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인류는 알파고를 상대로 단 한 번의 승리만을 거둘 수 있었죠.
우리는 알파고에게 충성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장난처럼 쓰지만, 이런 글을 쓰는 이면에는 알파고가 언젠가 의식을 가지고,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알파고를 비롯해 자율주행과 이미지 인식, 그리고 음성 인식 기술 등 현재 우리가 가장 성공적인 '인공지능'이라고 여기는 것들의 배후에는 '딥 러닝'이 있습니다.
딥러닝은 말 그대로 기계가 무언가를 학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입니다.
우리가 바둑을 두기 위해 바둑의 규칙을 배워야 하듯이, 알파고도 이세돌과 대국하려면 게임의 규칙을 배워야 하죠. 하지만 의식이 없는 기계가 어떻게 게임의 규칙을 익히고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뇌는 뉴런이라 불리는 세포들이 전기적, 화학적인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상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은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식의 근원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뉴런들이 상호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 그 자체입니다.
하나의 뉴런은 다른 뉴런들로부터 화학적 신호를 전달받아 전기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전기적 흐름이 뉴런의 끝에 있는 화학물질 주머니를 자극해 방출을 유도하죠. 방출된 화학물질은 또다시 다른 뉴런을 자극합니다. 뉴런 자체에는 의식과 같은 기묘한 신비감이 없는, 완전히 물리화학적인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적인 장치입니다.
딥러닝은 이러한 뇌의 신경 작용을 피상적으로 모방한 '인공 신경망'을 사용합니다. 먼저 여러 개의 노드로 구성된 입력층이 은닉층이라 불리는 여러 개의 노드로 구성된 또 다른 층과 연결되고, 여러 개의 은닉층을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의 출력층에 도달하죠. 이렇게 입력에서 출력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네트워크를 피드 포워드 신경망이라고 부르며, 입력과 출력 사이에 여러 개의 층이 있으므로 다층 퍼셉트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여러분은 이런 복잡한 용어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신경망 알고리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우리의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사들은, 진작부터 신경망 알고리즘을 도입해 당신의 입사지원서를 평가 중일 수도 있죠.
당신이 지원한 회사는 낮은 성과를 낸 직원과 높은 성과를 낸 직원들의 특징을 이미 데이터로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외국어 점수, 업무 관련 자격증의 개수, 소셜미디어 친구 수 합계와 같은 성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만한 지표들이죠. 이 데이터들이 바로 입력값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기존 직원들의 실제 성과를 10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 매긴 보고서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출력값이 될 것입니다. 이제 회사는 정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학습이란 직원의 입력값을 집어넣었을 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결괏값인 직원의 성과 점수가 가장 잘 일치하도록 신경망의 가중치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딥러닝은 입력값에서 결괏값의 단순한 순방향 이동만이 아니라 역방향으로도 이동하며 가중치를 조절해 실제 점수와 신경망으로 얻은 점수의 오차를 계속 줄여나갑니다. 이것이 딥러닝의 핵심인 역전파 학습입니다. 또한 이미 가지고 있는 직원의 데이터를 토대로 조정했기 때문에, 지도학습이라 불리는 방법을 이용해 컴퓨터를 학습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성과 알고리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학습을 마친 성과 알고리즘의 입력값에는 입사지원서에 적힌 여러분의 정보가 들어갑니다. 성과 알고리즘은 당신의 정보와 학습된 가중치를 바탕으로 당신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예측값을 출력할 수 있죠.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이 출력값을 토대로 당신의 합격 불합격을 손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내용들을 중간에 생략하긴 했지만, 이것이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딥러닝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인공지능과 얽혀있는 논쟁적인 주제들에 관해 생각해 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Turing Test
우리가 기계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만으로 사람인지 기계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지능과 의식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입니다.
딥러닝에 사용되는 인공신경망은 발전과 보완을 거듭해서 꽤 높은 수준의 글을 창작하는 GPT-3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킨다면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수준으로 성능을 끌어올릴 수도 있겠죠. 관점에 따라서는 현재 GPT-3가 만들어내는 문장이 사람과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GPT-3에게 이런 문장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발견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전에 탐험되지 않았던 안데스 산맥의 외딴 협곡에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유니콘들을 찾아냈다. 연구자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유니콘들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GPT-3는 이 글을 보고 마치 사람과 같은 창작력으로 유려하게 스토리를 이어나갔죠.
그들은 또한 완벽한 곱슬 갈기를 가졌고, 디올 메이크업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유니콘을 발견해서 놀랐어요."
인류학자인 Daniel St. Maurice가 말했다.
"그들은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이었죠. 우리는 유니콘에 관한 전설을 들어는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글의 창작수준으로 사람인지 기계인지 판단이 불가능하다면, 튜링 테스트의 제안에 따라 GPT-3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겠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 기계가 지능이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튜링 테스트는 무엇이 '지능'인가에 관한 질문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GPT-3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 해도, 우리는 이 기계가 단지 신경망으로 학습한 문장들의 조합을 바탕으로, 질문에 적절한 문장을 뱉어내는 단순한 입출력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GPT-3는 질문을 정말로 이해하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차례대로 생성해서 대답합니다. GPT-3는 진정한 의미의 지능이 없어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신체가 가진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세계의 모델을 구축합니다. 던진 공이 사물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저 공을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상호작용 속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여 세계의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딥러닝의 학습방식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델을 토대로 다음 순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도 예상합니다. 물론 예상과 다른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사과를 던져 금속 덩어리가 부서진다면, 우리는 낯선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기꺼이 세계의 모델을 수정하며, 다섯 살짜리 아이조차 수많은 물건을 장난감 자동차로 부수면서 세계의 모델을 훌륭하게 조직합니다.
우리는 모든 측면에서 다섯 살 아이보다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능력이 대단한 것이든 혹은 기술의 발전이 더딘 것이든,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아직도 너무 어렵습니다.
공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입력하고 머신러닝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일상의 지식을 컴퓨터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딥러닝의 또 다른 차이는 다양한 모델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체스와 바둑, 장기와 같은 게임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빠르게 학습합니다. 하나의 모델을 다른 모델에 적용하거나, 다양한 게임 모델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사람은 심지어 체스와 바둑을 같이 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둑 챔피언인 알파고가 체스를 두려면 이전에 입력되었던 바둑과 관련된 학습을 전부 삭제하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학습해야 합니다. 따라서 알파고는 우리를 능가하는 체스와 바둑 실력을 절대로 동시에 가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GPT-3가 아무리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해도 체스 말은 단 한 칸조차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알파고의 바둑과 GPT-3의 언어 학습에는 동일하게 딥러닝에 기반한 신경망 네트워크를 사용합니다. 또한 1997년에 체스 그랜드마스터를 꺾은 딥블루는 게임 트리 알고리즘을 사용했지만, 알파고와 GPT-3처럼 딥러닝의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체스를 두는 것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셋은 모두 딥러닝으로 작동 가능한 것이죠. 그렇지만 이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구동되어야 합니다. 반면 우리는 체스와 바둑을 동시에 두면서 말로 상대방을 도발할 수도 있습니다. 딥러닝의 알고리즘은 인간이 가진 뇌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입니다. 어쩌면 지능은 하나의 작업을 얼마나 잘 해내는가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유연하게 배울 수 있는가로 평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항을 종합해본다면, 현재까지 우리가 개발한 모든 인공’지능’에는 사실 '지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딥러닝은 최근 몇 년간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지능은 단지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GPT-3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가 가진 도구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딥러닝의 또 다른 문제는 신경망의 의사결정 과정을 우리가 온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딥러닝으로 구현한 성과 알고리즘은 입사 지원자에게 합격 여부를 통보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가 나온 과정 자체를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사람이 당신을 심사했다면, 그 면접관에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볼 수 있겠지만 알고리즘은 무수히 연결된 네트워크의 가중치와 노드에 존재하는 함수만이 당신의 합격 불합격을 결정합니다. 이것은 해석 불가능한 데이터로 가득한 블랙박스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딥러닝은 두 가지 주요한 문제로 인해, 현실적인 도입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훈련 데이터와 실제 케이스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Data Shift이고, 두 번째는 비슷한 예측을 보이는 여러 모델들이 서로 너무나 다른 가중치들을 가져서 어떤 모델이 타당한지 혼란을 일으키는 Underspecification입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딥러닝은 의료와 같은 중요한 분야에 빠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의 직관과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쁜 소식은 온갖 억측과 마케팅을 위한 과대포장이 딥러닝 분야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부 IT기업들은 자사의 거대한 신경망 모델을 강조하며, 머지않아 자신들의 딥러닝 모델이 사람과 같은 사고를 하게 될 것이라고 홍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검증할만한 과학적 기반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초인적인 인공지능이 출현하기 5년도 채 안 남았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의 소망과 다르게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일반 대중들에게 인공지능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며,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입니다.
2020년에 GPT-3가 발표된 이후, IT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거대한 신경망을 가진 언어 모델들을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GPT-3가 가진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뛰어넘는 거대한 모델들이죠. 국내 IT기업 네이버의 언어모델인 하이퍼클로바는 2,04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가 합작해 만든 메가트론-튜링 NLG의 파라미터는 5,300억 개이며, 구글의 스위치-트랜스포머는 GPT-3의 10배 수준인 1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지고 있죠. 거대 언어 모델은 이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회사들이 새로운 지능의 출현을 바라고 모델을 키운 것은 아니며, GPT-3가 가진 문제점들을 완전히 개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딥러닝의 핵심인 역전파학습이 뇌의 학습방식과 동일한지도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뇌가 딥러닝처럼 순방향과 역방향의 순서로 미세조정의 프로세스를 가지거나, 지도학습과 유사한 무언가를 하고 있을까요? 뇌의 학습방식이 딥러닝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언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또 다른 진영에선 딥러닝이 뇌의 작동방식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모방을 하고 있으므로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부 공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실제 뉴런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새로운 신경망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딥러닝은 인공지능의 가장 유망한 분야인 동시에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분야일 수도 있습니다. 딥러닝은 초기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꿈꿔왔던,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기계, 인공일반지능의 비전을 실현해 줄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비록 딥러닝의 초기 아이디어는 뇌의 작동방식에 영감을 받았지만, 더이상 딥러닝은 뇌와 신경과학에 신경 쓰지 않고 수학과 컴퓨터공학에 더 의존하며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딥러닝이 근본적인 단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능, 인공일반지능의 실현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Connectome
지능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지능과 의식의 기원을 자세히 탐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신경과학 연구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바로 예쁜꼬마선충입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생물을 정말로 '예뻐'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의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기술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도 생물학적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쁜꼬마선충의 외피를 제거하면 신경계가 근육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흥미로워 보이지 않으니 근육도 제거해보죠. 이제 소화기관과 생식기관이 함께 드러납니다. 이 두 기관도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니 없애보도록 하겠습니다.
껍데기와 근육, 각종 기관을 제외하고 남은 이것이 바로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 지도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이 실처럼 얇은 가닥들에 자신의 의식 전체를 위탁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체에게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깃들어있다면 말이죠.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은 단지 302개의 뉴런이 단순히 연결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시는 것처럼 우리는 이 생물의 신경 네트워크 전체를 전부 파악하고 있으며 각 신경에 이름도 붙여놓았습니다. 이처럼 한 생명체가 가진 모든 뉴런의 네트워크를 구현한 지도, 이것이 바로 커넥톰입니다.
이 작은 생물체의 커넥톰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공학자들은 꽤 오래전에 이 지식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모든 신경 네트워크를 컴퓨터로 구현하고, 센서와 바퀴와 같은 입출력기관을 가진 이 장치는 어떠한 명령 없이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경망의 연결만으로 예쁜꼬마선충의 행동이 생겨난 것이죠.
비록 신경망을 겨우 모사한 조잡한 기계이긴 하지만, 예쁜꼬마선충처럼 사고하는 디지털 생명체를 우리가 창조해낸 것일까요? 생명체의 행동과 지능, 그리고 의식의 근원은 정말로 신경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서, 막연한 모방이 아닌, 인간의 커넥톰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공일반지능의 실마리를 푸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의 커넥톰을 완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860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고, 뉴런 간의 연결은 100조가 넘습니다. 사람의 커넥톰을 밝히는 것은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과는 난이도의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 것이죠. 860억 개의 뉴런과 100조의 연결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신경과학자인 헨리 마크램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간종의 뇌 연결을 지도로 만들고 시뮬레이션하고자 하는 인간 뇌 프로젝트(HBP)는 이미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며,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거창한 계획만큼이나, 대내외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HBP는 그 규모나 목적에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GP)를 떠올리게 합니다. 1990년에 시작되어 2003년에 끝난 HGP는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 획득을 목표로 했던 장기 프로젝트였고, 당시엔 프로젝트의 실효성에 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론 HGP 덕분에 우리는 인간종에 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유전병을 이해하고,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죠. HBP는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한다는 목적 달성에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우리의 지능과 의식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습니다. HBP의 초기 비전, 인간의 뇌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는데 언젠가 성공한다면, 정말로 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점은, 뇌는 분명히 물리화학적인 장치이지만, 이 물리적 네트워크를 컴퓨터로 구현했을 때 의식이 창발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선 한 가지 가정을 추가해서 마지막 논의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인간 뇌의 커넥톰을 완성하고 기계에 이식하면, 지능과 의식을 가진 기계, 인공일반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AGI
우리는 왜 지능을 가진 기계를 상상하고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물론 인공일반지능을 가진 로봇이 존재하면 많은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지능형 로봇은 인류에겐 지나치게 가혹한 화성의 환경을 견디면서 건축물을 짓고, 식물을 재배하며 인류를 기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우리가 인공일반지능을 상상하는 이유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우리와 닮은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고, 배운 것을 다른 데에 적용하며, 다양한 일들을 동시에 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현재의 인공지능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적인 특징이죠.
기술이 진보해서 우리와 동일한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거나, 심지어 우리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계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높은 지능과 강력한 연산능력을 가진 기계로 양자역학과 중력을 통합하는 최종이론을 찾아내거나, 인류가 가진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상상은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AGI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모든 면에서 인류를 초월하는 초지성을 갖춘 기계는 상상에서 끝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기계가 지능을 갖추려면 인간과 같은 세계 인식을 해야 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신경과학 연구기업 누멘타의 설립자이자 과학자인 제프 호킨스는, 인간의 뇌를 모사해 의식을 가지게 된 AGI는 인간과 동일한 물리적 시간에서 세계와 상호작용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이런 기계는 학습 속도가 빠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의 인식도 그에 맞추어 변하고 확장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는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상상해왔던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공일반지능의 궁극적인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모든 생물의 기본적인 목표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더이상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면, 우리가 보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프 호킨스는 우리가 남겨야 하는 것이 인류의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인공일반지능을 가진 로봇이야말로 우주에 인류가 존재했고,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이자 우주를 비추는 지성의 마지막 봉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출처:https://we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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